살다보면

생을 정리하는 기쁨?! (글을 쓴다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일)

미또끄또 2024. 3. 25. 10:10

제목만 보고 이게 웬 미친놈 헛소리인가?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 '정리'라는 것이 자발적 의사에 따른 정리가 아닌 타의에 의한 정리, 정확히는 상황에 따른 반강제적 정리라면.

인간은 대부분 내일, 아니면 단지 10초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삶을 살면서도, 당연히 그 때도 지금 이 순간처럼 멀쩡하게 지금 디디고 있는 이 땅 위에 두 발로 서 있을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짧은 찰나의 순간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졸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은 그렇게 우리가 바라고 믿는 것처럼 만만하고 여유있게 바라만 볼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유서조차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유서를 작성해 놓으라고 권유한다. 하여 나도 유서를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정신과 사지가 멀쩡할 때 써야 제대로 작성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나는 5년전 부도와도 같은 파산으로 가족, 그래봤자 딱 둘 뿐인 아내와 딸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흔히 말하는 사업을 확장해서 부를 일구고자 분투하다가 맞이한 어쩔 수 없는 파산이었다면 가족들의 외면까지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때론 아내 몰래 저지른 일들이었기에 우리의 관계는 파산한 재정처럼 부도 직전까지 가고 만 것이다. 일상적 대화가 끊긴 지는 오래 됐고, 이제는 간혹 주고받던 카톡 메시지도 관리비 납부 영수증을 찍어 보내 주는 것 말고는 주고 받는 일이 없다. 결국, 법적으로만, 가족관계증명서 상으로만 부부, 가족... 그런 것인 관계.

 

 


 

 

그러다 보니, 어느날 문득 아내는 몰라도 외동딸에게는 무언가 유서 같은 거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두절, 무소식이 희소식인 관계라서 서로 알 수 없는 소소한 일상들을 미주알고주알 알리려는 게 아니라, 그래도 아빠니까, 잘 났거나 못 났거나 아빠니까, 피를 물려준 아빠니까 최소한의 전할 말은 건네주고 싶었던 것이다. 딸이 나중에 부모가 되어 만에 하나라도 "나도 부모가 돼보니, 아빠에게 내가 너무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드네, 너무 했었네..." 따위의 후회가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쓰는 유서

 

"사유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소크라테스의 금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잘 쓰기 위해서라도 잘 생각해야만 한다. 결국, 잘 쓴다는 건 생각을 잘 정리한다는 것이다. 분석철학계의 거인 비트겐슈타인은 그래서 "내 언어의 한계는 사유의 한계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언어는 입으로 표현한 생각이고, 글은 종이 위에 쓴 생각이니 말이나 글로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사유, 즉 생각이 짧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0대 후반인데 유서를 벌써 쓴다? 처음엔 나도 좀 어색한 생각도 들었다. 죽음 체험을 하기 위해 관 속에 들어가 관 뚜껑을 닫으라고 하고 어둠을 경험하는 것처럼. 하지만, 참 기이하게도 한 줄 한 줄 생각을 정리하며 써 내려가다 보니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는 계기도 맞이하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내 프로필에도 적어 놓은 것처럼, "죽을 때 아무런 미련, 기대, 원망 따위 없이 눈 감을 수 있다면 잘 산 거고, 다 산 거다. 그러니 잘 살고 잘 죽자"이었다.  

이렇듯 잘 살고 잘 죽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을 정리하는 기쁨", 그것도 정신과 사지가 멀쩡할 때 수행하는 기쁨을 맛봐야만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