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세 번 깜놀, 촌닭의 첫 서울구경 - 1970년대 서울

미또끄또 2024. 3. 16. 12:02

충청도 시골에서 야심한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여동생과 함께 [전설의 고향]을 보고, 주말이면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을 보던 게 문화 생활의 전부였던 내가 드디어 TV로만 접하던 서울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난생 처음으로 하는 서울 구경에 몹시 흥분한 나는 초행길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운동화도 새로 빨아 널었고 티셔츠도 가장 최근에 구입한 걸로 딱 한 벌 뿐인 청바지와 깔맞춤을 해 놓았다. 드디어 출발 당일, 소풍가는 기분을 내기 위해 고속버스 안에서 먹을 새우깡과 쭈쭈바 10개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D-day. 30분을 걸어 나가야 탈 수 있는 2시간에 한 번씩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 올랐다. 마침 나와 여동생 자리는 맨 앞자리,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였고 할머니는 우리 뒷자리에 앉으셨다. 출발 후 30여분이 지나니 슬슬 목이 마르기 시작했고 나는 쭈쭈바를 가방에서 꺼내 입구를 손으로 뜯기 시작했는데 잘 뜯어지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만능오프너인 앞이를 이용해 쭈쭈바 뚜껑을 힘껏 잡아 끊었는데...아뿔싸! 너무 격하게 뜯어지는 바람에 그만 내용물이 기사 아저씨 뒤통수로 날아가 꽂히고 말았다. 운전에 집중하던 기사아저씨는 너무 깜짝 놀라 속도를 줄이셨고 목덜이에 달라 붙은 쭈쭈바 내용물을 오른손으로 닦아내시며 눈을 흘기셨다. 얼마나 놀라고 민망했던지...하지만 이건 첫 번째 사건에 불과했다.   

 

   


 

한 숨 자고 나니 두 시간을 달려온 버스는 드디어 강남터미널 근처에 도달했고 생애 처음 서울 시내를 접하게 된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 서울의 첫 풍경을 눈에 담으려고 대형 앞유리 저 멀리 펼쳐진 서울 골목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때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삐까번쩍한 대리석이나 매끈한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길바닥에 온통 흙이 깔려 있는 게 아닌가? 뭐 이런 걸로 놀랄까 하겠지만, 평소 TV로만 서울을 접했던 나는 시골에서는 늘상 접해야만 했던 흙길을 서울에서도 접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놀라고 만 것이었다. 이것이 서울구경의 두 번째 놀라운 일이자 자못 실망이 큰 사건이었다.   

   


 

고속버스 하차 뒤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작은아버지가 살고 있는 동네 주변 도로에서 내렸다. 그런데, 초행길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서울 방문은 처음이었던 할머니는 신호등도 없는 8차선 도로를 지나가려고 갑자기 도로로 뛰어 들었고, 하마터면 사람을 칠 뻔했던 택시기사는 쌍욕을 발사했다. "아니, 이 놈의 늙은이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어딜 갑자기 뛰어 들어!" 난 할머니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 들어 너무 놀랐지만, 태어나 처음 들어본 택시기사의 욕지거리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자기 어머니뻘되는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심한 말을?" 그리고, 초등학생으로서 소심한 성격의 나에게 그 당시 상황은 트라우마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도 날 괴롭혔다. 택시기사들이 다 그 기사같은 두렵고 이상한 외계인처럼 보여서 웬만하면 택시는 타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 트라우마는 보험회사에 취업해 택시기사님들을 상대로 한 운전자보험 영업을 하면서 치유 받을 수 있었지만. 보험 가입을 위해 기사님들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그들도 평범한 우리네 이웃아저씨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젠 어느덧 30여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들이 가끔 나를 그 당시로 소환할 때면 이 사건들은 다시 머릿속에 떠올라 추억 속을 거닐어 보게 한다. 웃픈 이야기가 아닌, 웃놀(웃기면서도 놀라운) 이야기가 되어.